[스크랩] 술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이었다

즐거운세상위해 2013. 9. 14. 12:25

술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이었다.

    수블>수울>수을>술로 변천하였을 것이다.

 

술의 古字는 酉(닭,서쪽,익을)자이다. 酉字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편리)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반면 술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이었다. 수블>수울>수을>술로 변천하였을 것이다. 옛사람에게는 물이 난데없이 끓는 것이 신기하여 물에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불'이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옛말에 물은 신이, 술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술의 기원은 전설로만 전해진다. 이집트에서는 천지의 신 이시스의 남편인 오시리스가 곡물신에게 맥주 만드는 것을 가르쳤다고 하고 그리스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 로마에서는 바커스를 술의 시조로 말하고 있으며 구약성서에서는 노아가 최초로 술을 만든 사람이라고 한다. 반면 동양의 경우 중국에서는 황제의 딸 의적이 처음을 술을 빚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하백의 딸 유화가 해모수의 꾀에 속아 술에 만취한 후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그가 주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문헌에 술에 관한 기록이 드물지라도 술이 단순히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미 고조선시기 이전부터 동아시아 대륙에 번성했던 우리 민족은 발효문화를 장기로 하였으므로 술의 역사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술의 기원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기 보다 화북과 산동반도지역의 동이족 술문화가 중국과 한반도에 동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1.고구려의 술 부여, 진한, 마한, 고구려의 무천, 영고, 동맹 등 제천행사가 '주야음주가무'하였다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발효의 나라라 할만큼 훌륭한 술과 앞선 장담그기 기술이 발달했다. 이때 이미 술누룩酒鞠과 穀芽로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구려의 주조기술은 중국으로 건너가 곡아주라는 명주를 잉태하고 고구려의 양조기술을 이어받은 낙랑주법이 신라사회에 뿌리를 내려 신라주가 당대 운사들에게 애용되었다.

2.백제의 술 일본에서 酒神으로 모시는 백제인 수수보리가 일본에 누룩과 술 빚는 법을 전함으로써 비로소 일본에 술다운 술이 생겼다고 한다. 일본고사기 중권 응신천황조에 응신천황이 수수보리가 빚어 올린 술을 마시고 부른 노래의 가사가 전한다. 양조기술자인 수수보리는 이름의 뜻이 '술 거르는 이'로 이때 이미 백제에서는 발전된 양조법으로 술을 빚어진 것이다. 백제술의 자세한 기록이 없어 말하기 어려우나 일본에 남아있는 기록과 술빚기 기술로 보아 고구려의 술빚기에 비해 그리 못하지 않은 것이었을 것이다.

3.신라와 통일신라의 술 당대 시인들이 칭송하던 신라주의 명성은 고구려로부터 전해진 듯하다. 삼국 중 비교적 늦은 시기에 국가의 체계를 갖춘 신라는 술빚기에서도 가장 낙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함께 고구려로부터 양조기술이 전해진 이후, 국력과 함께 말로 발전하여 "지봉유설"에 전하듯이 당대시인 이상은의 시조 "한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스러질까 두럽구나"하는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해동역사에 나오는 고려주가 바로 신라주라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종무열왕은 식량으로 하루에 쌀 3말, 꿩 10마리가 소요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양조곡주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상류사회에서는 청주류의 음용이 성행하게 되었다.

4.고려시대의 술 고려시대가 되면 전대의 곡주류 양조법은 이미 완성되어 고려전기 중에 청주류, 중양주류, 탁주류, 재주류, 감주류 등의 양조기술가 종류가 심화되었다. 고려시대에도 송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고 사원에서는 여관업을 겸하여 술을 빚어 팔기도 했다. 한편 궁중의 양온서(궁중에서 술을 빚던 관청, 후에 장예서, 사온서로 명칭이 바뀜)에서도 국가의식용 술을 빚었다.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일반적으로 고려사람은 술을 즐긴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는 그러한 좋은 술을 먹기 어려워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것을 마신다'고 고려의 술이 묘사되어 있다. 양온서에서 빚는 술은 ‘법대로 빚는다’해서 법주라고 하였는데, 요즘의 법주와는 전혀 다른 술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종묘제사에 관용으로 쓰는 중양주였을 것이다. 또 고려시대에 비로소 소주가 전래되었는데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의하면 소주는 원나라 때 아라비아와 원,만주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소주가 유입된 시기는 대체로 고려 충렬왕 3년이며 소주 음용시기는 충숙왕에서 충혜왕 사이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술의 3대 분류인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형태가 완성된 시대였다.

5.조선시대 조선시대 술빚기의 특징은 중양주류가 발달하고 양조원료도 멥쌀 일색에서 찹쌀이 점차 늘어난다는 점과 腐本, 즉 술밑을 사용하여 효모를 증식시키는 기법이 발전하였다는 점 등이다. 조선시대에 유명했던 술은 무려 3백 여 가지에 이르나 그 중에서도 백하주, 삼해주, 이화주, 청감주, 부의주, 향온주와 약산춘, 호산춘, 노산춘 등의 春酒類를 들 수 있다. 소주도 날로 소비가 늘어 다산 정약용이 전국의 소주고리를 거두어 들여 식량난을 예방하고자 상소하기도 할 정도였다. 유명한 소주로 감홍로, 죽력고, 이강고 등이 있고 조선후기에 들어서서는 合酒類와 過夏酒類가 출현하여 탁주,약주, 소주 외에 혼양주가 덧붙여지게 되었다
출처 : 찻잔속에 달이뜨네
글쓴이 : 桃源 裵英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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